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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독후감] 구의 증명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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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부피를 구하는 공식은 4/3πr³

 

도서정보





 제목 : 구의 증명

 저자 : 최진영


당부의 말

 


필자는 글재주가 없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언어능력도 퇴화하고 있다.
30대를 넘어서부터는 "거시기"라는 단어 하나로 대화의 대부분을 대체하고 있었다.
점점 단어도 까먹어 가고, 긴 문장을 말할 때 어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한 뒤로 책을 부단히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기만 해서는 표현력이 늘지 않았다. 전문적인 글쟁이는 아니지만 독후감을 써서 언어능력을 되살려보고자 한다.
즉, 이 독후감은 순전히 본인을 위한, 젊은 치매를 막기 위한, 한 번 읽은 책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한 내용임을 밝혀둔다.


줄 거 리

 

이 소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2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내용 안에 묵직하고 가슴 먹먹함이 꽉 차 있었다.

 

구와 담은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첫눈에 반한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끌리고 둘은 마치 원래부터 서로가 하나였던 것처럼 그렇게 붙어다녔다.

 

둘을 놀리는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이 이들 사이에 시련을 주어도 구와 담은 이겨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구가 담이고 담이 구여야 했으니까.

 

친동생처럼 돌보던 노마가 둘의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죽고 그 방황으로 구가 다른 여자를 품어도 담은 언젠가 구가 돌아올 것을 알았다.

구가 군대로 도피하듯이 입대를 해도 담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둘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그 둘을 갈라놓은 건 죽음도 변절도 아닌 이었다.

구에게는 부모가 물려주신 어마어마한 빚이 있었고, 이 빚은 구와 담을 옭아맸다. 아무리 도망쳐도 그 문제는 숨 쉴 틈도 없이 앞에 찾아왔다.

 

사채업자는 산에 숨어사는 구를 찾아내어 죽도록 구타했다. 도망치다 교통사고까지 당했다. 죽음이 턱 앞에 와 있다. 구의 웃는 모습도, 우는 모습도, 죽는 모습도 담이 봐야했다. 구가 눈에 담는 마지막 장면은 반드시 담이어야만 했다.

 

담은 길에서 죽어가는 구를 껴안았다. 집으로 시신을 업어왔다. 그 둘이 처음으로 2년 가까이 숨어지낸 집에.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 그 집으로.

소독약으로 시신을 깨끗이 닦으며 고단한 삶이 배어있는 온몸 구석구석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리고 한 입 한 입 곱씹어 먹었다. 말 그대로 씹어 먹었다.

구의 시신을 묻을 수도, 그 힘든 삶을 견디어 내야했던 몸을 불구덩이 넣을 수도 없었다. 소중한 구의 살을 칼로 베어낼 수도, 요리를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뜯어 먹었다.

 

구는 담이 죽으면 담을 먹겠노라고 했었다. 떠나보내지 않고 먹어서 완전한 하나가 되어 오래도록 삶을 살아가며 기억하고 같이 세상을 바라보겠다고.

 

둘은 완전한 하나가 되었다. 마치 월하노인의 붉은 실의 상대방을 운 좋게 일찍 찾은 것처럼 영혼은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였고 이제 육신마저 하나가 된 것이다.

 

연애 초 나의 연인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너를 먹어버리고 싶어.” 그냥 바라보고 어루만지는 것으로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먹어서 자신의 일부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 그토록 나를 사랑해주었었구나. 글솜씨가 없어 독후감에는 단 1%도 전달할 수 없는 구와 담의 심정을. 그때의 연인의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연인에게 물었다. 너는 나와의 헤어짐을 상상할 수 있냐고.

나의 연인은 대답했다. 이미 네가 나고 내가 너인데 어떻게 헤어질 수 있냐고. 그 말 또한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나를 많이 사랑해주고 있구나. 하고.


인상적인 구절

 

처음 만났을 때, 구와 나는 다른 조각으로 떨어져 있었다.

함께 하던 어느 날 구와 나 사이에 끈기 있고 질펀한 감정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우리의 모난 부분을 메워주는 퍼즐처럼, 뼈와 뼈 사이의 연골처럼, 그것은 아주 서서히 자라며 구와 나의 모나고 모자란 부분에 제 몸을 맞춰가다 어느 날 딱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이다. 딱 맞아 떨어지며 그런 소리를 낸 것이다.

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네.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하겠네.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다만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랑에 가까운 감정. 우리 몸에도 마음에도 그것이 들러붙어 있었고 그것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